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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문희

1세대 트로이카로 불리는 배우 문희의 최근 근황과 놀라운 인생사.

문희 나이

프로필

본명  이순임

1947년생, 나이 77세 

고향  서울

 

배우 문희는 당대 최고의 배우로 불리는 난정임과 윤정희 함께 1세대 스타로 60년대 많은 작품에 참여하며 명성을 날렸는데요. 1965년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에 다니다 시절 KBS 탤런트 시험에 응시해 카메라 테스트를 했는데 당시 심사위원으로 그 유명한 이만희감독의 눈에 띄어 발탁되었다고 해요. 바로 영화 흑맥에 데뷔할 수 있었죠. 

 

리즈시절 사진

사실 문희는 친구를 따라 시험을 본거라 크게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었는데 덜컥 합격해 버린 케이스. 연예계에서 친구 따라 그냥 봤는데 오히려 친구보다 따라간 친구가 붙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녀도 그런 케이스.

 

화제의 결혼식

결혼사진

배우 문희는 연예계에서 이런 저런 많은 시련을 겪었었는데, 이 시기를 지나고 재벌 2세 한국일보 장강재 회장과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연예계에서는 최초로 재벌 2세와 연예인의 결혼으로 대중들에게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었어요. 결혼식 사진을 보면 불다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남편 장강재 회장도 20대일 때 둘은 결혼식을 올렸어요. 

 

문희 장강재 회장의 만남은 배우로 출연한 영화를 제작하게 되면서 서로 알게 되었고 둘은 연인 사이로 발전해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된 신데렐라스토리 같은 러브스토리.

 

결혼하고 연예계 은퇴하게 되었는데요, 활발하게 배우로 활동하던 시기인데다 데뷔한 지 6년 만에 그만두어서 팬들의 아쉬움이 크기도 했었어요. 

 

갑자시 떠난 남편 

문희 남편

한국일보 기자 출신의 회장인 강장재 남편 1993년 47세 이른 나이에 간암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문희 나이도 40대 후반이었다고 해요. 너무 일찍 남편을 여의고 힘들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밖에도 나가지 않고 칩거생활을 하며 지냈었다고 해요.

문희근황

자신이 내조를 못해서 남편이 일찍 별세한 것 같아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2년간 자책하며 보냈다고 고백했습니다. 남편이 일찍이 먼저 떠나고 현재까지 재혼하지 않고 자녀들을 키워냈다고 합니다. 

 

자녀 

딸

문희 장강재 두 사람 사이에는 슬하에 아들 2명, 딸 1명을 두었는데요. 좋은 아침 방송에서 45년만에 방송에 출연하면서 딸 장서정도 함께 모습을 보였는데요. 딸이 바빠 자주 못 보고 있다고.

 

장남 아들은 전 일간스포츠 대표이사 사장이었던 장중호. 아들 장중호는 2003년 배우 명세빈과 결혼하게 된다고 언론에 발표되어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요. 문희도 직접 아들의 결혼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장중호 명세빈은 파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최초 집 공개

문희 집공개

방송활동이 없었던 그녀였지만 2014년 아침 방송을 통해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가족 딸, 집을 최고로 공개했었습니다. 햇볕이 잘 들어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통유리창이 있는 거실로 낮에는 조명이 따로 필요 없다고. 집안 내부는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인테리어가 돋보였습니다.

 

 

결혼 생활

결혼하면서 가정에 충실하며 아이들을 키우며 가정주부 삶을 살았는데요. 이전 원로 여배우들 경우 결혼후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과 달리 재벌과 결혼했음에도 잡음 하나 없이 화목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하네요. 

활동 당시 문희

 

 

근황

문희 아들

현재 백상재단 이사장 역임주이라고 알려졌습니다. 

 

배우 시절 일화 

드라마 촬영시

활동 시기였던 1960년대~1970년대에 왕성한 영화 출연을 해왔는데요. 영화배우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지도를 올렸어요. 엄앵란과 절친사이로 알려졌는데 서로 현장에서 처음 만나 점점 가까워져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같이 촬영장에 있던 남자배우들도 그녀를 보고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눈이 이뻐 쳐다보기도 부끄러웠다고. 엄앵란은 어떻게 저렇게 작고 가녀린 체구로 힘든 일을 할까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현재도 엄앵란과는 절친한 사이로 지낸다고 하네요.

 

1968년 미워도 다시 한번 영화로 흥행작을 만들어냈는데요. 당시 최고 기록이었던 영화 성춘향 기록을 깨고 역사를 다시 썼었고, 여기서 맡은 배역은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이때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최고 인기 정점을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