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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가수 활동을 하며 전성기를 누린 가수 윤항기, 가수 윤복희 오빠로도 유명한데요.
프로필
1943년 9월 15일생, 81세
고향 충청남도 보령군
가족 부인, 아들, 동생 윤복희
데뷔
1959년 <정든 배> 데뷔했으며, 당시 작곡가 김희갑이 단장으로 있던 에이원쇼를 통해 가수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군 복무
1960년 18세 나이에 해병대에 입대해 그의 재능을 살린 군악대 사병으로 복무를 하였어요. 전역 후 1964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록 그룹 키보이스를 결성하게 되었는데요. 그룹 활동 도중 여러 곡이 히츠를 치면서 대중들의 인기를 얻어 인지도를 쌓고, 음악적 역량도 이따 많이 키우게 되었다고 하네요.
저작권료
동치미에 출연해 손자 두 명이 있다고 밝혔는데요. 큰 애는 고1인데 전체 학년 수학에서 1등하고, 둘째는 예술중학교를 들어가 피아노 전공을 했다고 자랑스러워했는데요.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는 자신의 신발, 가방 하나 안 산다며 검소하게 생활하는 며느리를 이뻐했습니다. 아들이 현재 신학대학교 교수인데 봉금이 뻔하고, 그걸로 애들 교육시키고 먹고사는데 턱없이 부족하다며 며느리가 애들을 열정적으로 공부시키는데 옆에서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고백하며, 현재 들어오고 있는 저작권료로 손자들 공부시키는데 보태준다고 밝혔습니다.
젊었을 때 곡을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생각지 않게 매달 저작권료가 들어와 노후에 큰 도움을 받을 거라 생각도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시한부 판정
건강악화로 병원을 찾았는데 사실상 6개월의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가수 윤항기. 당시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이 힘든 심정이었는데 옆에 있던 아내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고, 정신적으로도 견딜 수 있게 지탱해주었다고 해요.
동생 윤복희
가수로 유명한 윤복희가 동생이죠. 그녀의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아티스트로 유명한데요. 그는 동생의 음악적 재능은 단순히 가수라고 설명할 수 없는 재능이라며,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동생은 가수와 배우를 넘어 예능에서도 활약도 대단했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탄탄한 가창력과 연기 실력으로 현재는 가장 좋아하는 장므 뮤지컬에 깊이 빠져 즐겁게 활동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해주었습니다.
윤복희는 여자로서는 매우 힘든 삶을 살았었다고 알려졌는데요. 가수로 성공한 삶을 살았지만 결혼생활은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는데요. 두 번의 이혼을 한 그녀.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지고 두 번째 가수 남진과 결혼해 큰 주목을 받었었는데요.
하지만 재혼도 얼마 안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남편에 대한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남진과 결혼해 이후에 미안해하며 사실을 털어놓고 집을 나왔었다고..세월이 한참 지난 후 예능에서 과거를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출연과 연기 활동
윤항기는 가수활동에서 그치지 않고 1975년에는 영화에도 출연하며 연기자로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서 그는 음악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돌연, 신학 공부하러
그는 가수와 연기자 활동을 병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던 중이던 1986년, 돌연 모든 활동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가 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팬들과 주변 사람들은 갑작스러워했었는데요.
그가 밝히길 개인적인 신념과 종교적 사명감으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목회자로 활동을 이어갔으며, 이는 그의 인생에서 큰 획을 긋는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현재까지 그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으며, 종교계에서 높은 인지도를 쌓았습니다.
학력
연세대학교 종교음악과 학사
미국 미드웨스트 신학대학교 신학과 학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교회음악학과 석사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교 신학과 석사/박사
현직
예음예술종합신학교 총장 역임중
한구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
한국예술사관실용전문학교 학장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고문